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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투명한 거미줄 - 생활과 묵상 날짜 2020.06.02 16:37
글쓴이 정일용 조회/추천 44/2

무당거미와 나눔의집

정일용

창밖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봄바람에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내 앞에 산적해 있는 바쁜 스케줄도 계절을 옮기는 이 바람 앞에서는

잠깐이지만 하늘을 쳐다보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다 문득 창 밖 나뭇가지 사이에 매달려 있는 한 마리의 무당거미가 의젓해 보입니다.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어 보이는 이놈의 당당함이 부럽게 다가옵니다.

 

그러구보니 나눔의 집은 무당거미와 닮은 것 같네요.

정처 없이 허공에 떠있는 듯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촘촘히 엮어있는 거미줄 한 가운데에서 몇 시간이고 미동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그 모습이 우여곡절 많은 이 마을에서 20년간을 살아온 우리와 닮았습니다.

 

예전에 거미가 줄을 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어요.

자신이 정한 그 구역 안에서 거미가 하는 일은 점을 찍는 것이지요.

실을 뽑아 낼 수 있는 처음의 장소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점부터 그물을 만들기 시작하는데요.

자신이 도달해야하는 건너편의 가지는 가깝지만 그럼에도 바닥까지 내려와 그 가지로 건너가더군요.

 

이렇게 점이 선이 되는 것이겠지요.

가지와 가지 사이를 반복해서 오르다가 어느 순간에는

자신이 만들어낸 거미줄을 통해 이동을 합니다.

세세하게 그리고 촘촘히 실을 엮고 이내

중심점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그곳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다른 무언가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거미줄에 닿게 되면 민감하게 움직이지요.

 

그 모습이 닮았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거미가 만들어 놓은 투명한 실처럼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동안 상계동 지역을 오가며 만들어 놓은 그물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는 맑고 투명한 줄이지만

그럼에도 가슴 시린 누군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걸려 버리는 거예요.

 

 

그때 우리는 거미처럼 달려갑니다.

아무도 모르는 미묘한 진동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울리는 떨림이 있기에

그곳으로 다가갑니다.

 

우리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저마다의 그늘을 가지고 있지요.

그것이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기인하였건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되었건 간에

우리는 우리의 한계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주 그 그늘 주변을 서성거립니다.

어느 순간에는 아주 오랜시간을 그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있기도 합니다.

 

내 그늘 속의 공간을 다른 사람이 들여다보는 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늘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사람을 미끄러트리고,

밀어내며, 다가오는 걸음을 늦추도록 만듭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의 그늘진 공간은 피해가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만나는 것에 익숙합니다.

 

이는 우리가 겨울날의 빙판길을 피하고 조심하는 것과 같은 이치 같습니다.

그곳을 밟으면 내가 넘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상처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공간은 항상 그늘진 음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가 그늘진 음지로부터 시작되었기에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가 20년의 세월을 거쳐 만들어 놓은 거미줄이 투명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겠지요.

햇빛을 투과해서 그 빛을 우리 뒤의 누군가에게까지 흘려보내는 거미줄이기에

오히려 사람들이 우리를 찾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보통의 복지기관처럼 공적자금 만으로 운영되는 곳에서의 거미줄은 유색(有色)일 것 같습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흔적과 공적이 드러나거든요.

거기에서 생겨나는 그늘을 보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데이터와 지령에 따라

거칠게 그늘로 다가가지요.

투명한 거미줄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의 투명함은 그늘을 그늘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세심함이구나.”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그늘 속에서 오히려 우리가 상처를 받고,

넘어지면서도 그늘에 앉아있는 한사람에게로 늦지만 꾸준히 다가가고 있잖아요.

 

이는 예수께서 끊임없이 타인의 그늘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이곳도 스무살, 청년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끼리는 아웅다웅 서로를 가늠하지만 첫 마음의 열정과

무모할 정도의 순수함은 깊이로 녹아들었을 것입니다

 

나눔의 집이 좀 더 투명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둠은 어둠으로 품어주고 밝음은 우리를 투과해서 그늘까지 도달하는...

 

있음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따스한 미소가 되는 그런 곳이 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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